수리섬영도

"영도가 간직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바라보고 소중하게 기록합니다."

[영도DBpalm] 3회_자이로콤파스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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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유리 소설가 작성일 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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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dbpalm. 영도의 사소한 것을 디비파헤쳐 저장하고 키운다.
 


한글로 쓰여 있음에도 한글로 해독 불가능한 말들이 있다. 건축용어 대부분과 기업 실무 용어, 디자인 용어 같은 것들 말이다. 가덕도에서 한 어부를 인터뷰할 때 그는 하꾸로라는 말을 반복했다. 녹음파일을 열 번쯤 들으며 하꾸로가 뭔지 고민 고민하던 나는 다른 사람의 인터뷰 파일에서 하꾸를 이래 첩첩이 안 쌓아놓소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그 뜻을 알았다. 하꾸(はこ). 상자라는 뜻의 일본어. , 우리 할머니가 단칸방을 하꼬방이라고 하셨지.

 

이런 인터뷰 기회가 아니면 목소리나 서류로 떠도는 말에 호기심을 발휘할 기회가 적다. 하지만 작은 회사 간판과 유리창에 인쇄된 말은 자주 궁금하다. 영도 수리 조선소가 있는 깡깡이 마을에 가면 그런 일이 잦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지만 알 것 같지 않은 단어들, 박킹, 자이로콤파스, 보이드, 바라스트, 콘베어로라……. 콘베어는 대충 알겠고 로라는…… , ‘로라스케이트. 알지 알지. 로라. 선박을 수리하는데 로라는 왜 필요할까. 자이로콤파스는? 콤파스의 한 종류겠지. 원 그릴 때 쓰는 거. 그럼 박킹, 박킹은…… 그러다 깡깡이 마을을 벗어나면 싹 잊어버린다. 그래서 이번 원고를 쓰기 전에 깡깡이 마을 간판 사진을 꼼꼼히 찍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해독에 성공했다.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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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이로콤파스(Gyro Compass)는 정밀한 나침반이다. 보통 나침반은 정확한 북쪽을 가리키지 않는다. 자기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편각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1,000km까지 차이 나기도 한다. 항공기나 선박같이 정확한 방향이 중요하면 나침반 대신 자이로컴퍼스를 사용한다. 팽이가 회전하는 동안 넘어지지 않는 원리처럼 지지대가 기울더라도 회전축의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구()가 평형을 유지해 정확한 북쪽을 가리킨다. ‘조타기가 선박의 방향을 조정하는 장치이니 사진의 회사는 자이로컴퍼스 및 조타기 수리를 전문으로 한다.



사진2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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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②                                    사진 

 


사진 , 사진  깡깡이 마을 작은 회사 간판들엔 박킹’ ‘가스킷이란 단어도 수두룩빽빽한데, 박킹은 Packing이고 가스킷은 Gasket이다. 패킹과 개스킷 둘 다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밀폐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위치의 조건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다. 패킹은 보통 둥근 기관에서 한쪽이 개방된 부분을 막기 때문에 태플론(Teflon)이나 카본(Carbon)으로 만든다. 엔진의 피스톤 밸브에 사용한다. 개스킷은 양쪽에 평평한 면이 있는 부분을 밀폐하기 위한 것. 면과 면을 볼트나 너트로 결합하는 형태다. 밀폐 용기 뚜껑에 달린 게 패킹이고 냉장고 문 가장자리에 달린 게 가스킷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콘베어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컨베이어 시스템이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물건 또는 소재를 운반하는 기계적 장치. 흔히 마트 계산대에서 볼 수 있는 건 컨베이어 벨트다. 더 크고 육중한 물건을 옮기기 위해선 벨트 대신 금속 롤러를 사용한다. 공장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생산 라인을 떠올리면 된다. 선박에 사용하는 컨베이어 시스템에선 롤러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사진의 회사는 컨베이어 벨트와 롤러 수리를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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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진 



 사진  수입리그남바이트에선 일단 수입을 뗀다. 수입품이란 말이겠지. 리그넘바이트(lignum vitae)는 무려 나무 이름이다. 한국말로 유창목. 나무에 기름기가 많아 유창목. 선박의 역사를 상상해봤을 때 관리하지 않아도 기름이 저절로 배어나는 나무가 얼마나 유용했겠는가. 옛날엔 이 리그넘바이트로 큰 배의 프로펠러도 만들고 볼링공도 만들고 야구 배트도 만들었다. 선미관이란 기관은 프로펠러축에 해수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인데, 이곳을 밀봉하기 위해 오래전에는 유창목을 사용했다. 지금은 스테인리스를 사용한다. 사진의 간판은 오래된 흔적만큼 선미관 소재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선반은 금속을 깎아 가공하는 공작기계 자체를 의미한다. 선반으로 배에 필요한 부속들을 만들어 낸다고 이해하면 된다사진  부속을 만들기 위해 목형(모형)을 제작해 주조하기도 한다. ‘로구로는 일본어 ろく-이고나무를 깎는 공작기계를 가리킨다.



사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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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반회사는 이리저리 거래처가 많다. 요즘은 컴퓨터로 거래처 리스트를 관리하지만, 깡깡이 마을에서 오래 일한 사장님들은 공장 철문에 자주 오가는 거래처 목록을 적어놓기도 한다. 사진 ⑥ 어떻게 보면 전산 관리보다 편리한 아날로그 시스템이다



사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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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박 하나를 수리하는 데 필요한 용어와 회사는 많다. 선박은 가까이서 보면 짐작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금속과 목형과 다른 여러 가지 소재는 여러 회사를 거쳐 한 개의 기관이 되고 그 기관이 모여 더 큰 기관이 된다. 살아있는 것처럼 기관과 기관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수리섬에 들어와서야 지친 배는 시동을 끄고 눈을 감는다. 조밀한 나침반도 쉰다. 헐거운 곳을 조이고 낡은 곳을 교체하고 따개비와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칠을 새로 하면 다시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수없이 헤엄쳤던 바다로 다시 나간다. 자이로컴퍼스의 스위치를 켜고 갈 방향을 정한 배는 항해사가 잡은 조타기를 따라 웅장한 음향을 낸다.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배는 북쪽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사진. 김유리 

김유리 소설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원작 작가. 서울사람 아님. 텍스트 노동자. 출세욕있음. 의외로 잘씀. 의외로 착하고 귀여움. 글쓰기 강사. 365일 여는 강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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