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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최초 재배지 영도, 그리고 조내기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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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배길남 소설가 작성일 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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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최초 재배지 영도, 그리고 조내기 고구마
 




고구마.

메꽃과에 속하는 쌍떡잎 식용작물. 수분 69.39%, 당질 27.7%, 단백질 1.3%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주성분은 녹말이다. 멕시코와 남미가 고향이었으나 깡패 콜럼버스에게 납치되어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비상식량 정도로 취급받던 고구마는 스페인의 필리핀 정복 시 슬쩍 밀입국에 성공한다. 아직 신인이었던 고구마는 1594, 명나라 상인 진진용을 만나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재배법도 쉽고 수확량도 많았던 고구마는 중국에서 제법 히트를 친다. 그로부터 11년 뒤, 류큐 왕국의 사신 노쿠니 쇼칸(野國總管)의 스카우트로 고구마는 다시 한번 해외 진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1605, 일본의 시마즈 이헤이사(島津家久)가 류큐 왕국을 정복하면서 고구마는 일본 시장을 공략하게 된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일본에서 고구마는 슈퍼스타로 등극한다. 나가사키에서 간사이(關西지방으로, 이어서 간토(關東), 그리고 일본 전역으로 퍼진 고구마는 1715년 마침내 대마도까지 점령한다. 그리고 인기스타는 또 한 번 운명의 만남을 갖게 되는데.

 

 

야이 씨, 얼어 죽겠네.” 


소설가 길남 씨는 후배 강군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다분히 불순한 의도가 있는 수작이다.

 

, 오래 기다렸죠? 우체국에 잠시 들렀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데 어디로 갈까요?”

 

영도.”


? 갑자기 무슨 영도요? 밥 먹으러 가자면서.”


길남 씨가 갑자기 부담스러운 시선을 던진다. 이 추운 날씨에 달달 떨며 기다렸는데 그 정도 소원도 못 들어주냐는 눈빛 공격이다.

  

우와앗! 그만, 그만! 갈게요 간다고, 영도. 그런데 거긴 왜?”


그러자 비장한 목소리가 떨어진다.

 

고구마 찾으러!”


이건 또 뭔 소리야? 아후, 선배만 아니면 이걸 그냥.’이란 표정을 짓는 강군이다. 이랬든 저랬든 차는 부르릉 출발한다. 어느새 부산항 대교를 건너는 두 사람.

 

벌써 영도 들어왔어요. 도대체 어디로 가잔 겁니까?”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오동 꽃길, 한진중공업에서 유턴해서 7분 거리에 있는 언덕길이다. 그곳에서 먼저 구 초량과 신 초량, 그리고 대마도에서 최초의 고구마 종자를 보냈던 부산성의 위치를 가늠한다. 영도는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를 재배한 곳으로 그 고구마의 이름을 조내기 고구마라 부른다. 최근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이 봉래산 바로 밑자락에 개관했다고 하니 그곳을 찾고, 바로 부근의 영도 조내기 역사 공원까지 방문하기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내기 고구마를 기념하며 이름 지은 조내기로를 살펴보면 오늘의 취재가 끝난다. 그 이후 우리는 그 유명한 영도 엉터리 집으로 가서 빙장회와 낮술을 때리는 것이다!”


황당하게도 강군은 이 횡설수설을 한 번에 알아듣는다. 그러고는 핸들을 휙휙 돌려 영도의 악명 높은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말없이 운전에 열중하는 그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길남 씨.

 

니 방금 속으로이 선배 샛기, 자기 취재하면서 나를 또 운짱 부려먹는구나.’ 뭐 이런 생각 했지?”


그러자 강군이 우문현답을 던진다.


내가 뭐 선뱁니까? 쪼잔하게.”


분하지만 1패를 당한 길남 씨. , 입맛이 쓰다.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영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구마 재배지이다. 1763년 조선통신사 정사였던 조엄은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발견하고는 부산성으로 고구마 종자를 급히 보낸다. 바로 그 종자가 영도에서 최초로 시험 재배됐던 것이다. 길남 씨는 여기에서급히라는 말에 빨간 줄을 좍좍 긋고 별표를 다섯 개 친다. 조엄 그는 왜 그렇게 급했을까?

 

 

근 십 년간 나라엔 흉년이 들어 농가의 빈곤이 끝을 향하고 있다. 네가 방금 먹었던 고귀마는 식량이 부족했던 왜의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작물이다. 만약 우리 땅에서 재배된다면 수만 아니, 수십만의 백성들이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 성칠아! 네 노비 문서를 고귀마 곁에 태운 이유를 알겠느냐?”

성칠이 정사 어른!” 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당장 이틀 뒤, 고귀마 종자와 재배법을 가지고 부산포로 떠나거라. 관의 허락을 얻고 봄에 파종하는 것이 성공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지키는 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 배길남 소설 <조내기 고구마> 에서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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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

 




당시 조선은 몇 해 동안이나 가뭄이 계속되어 백성들은 대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조엄은 식량 대용의 구황작물을 발견하자마자 5G보다 빠른 속도로 대처했다. 일본으로 통신사가 갔던 것도 수차례이고, 참여했던 관원들만도 수를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중 고구마를 본 자가 왜 없었을까? 오직 조엄만이 백성을 위한 눈으로 보고, 백성을 위한 실천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근처에서 도왔던 사람은 기록에 남지 않았겠지만)

 

실제 고구마는 백성들의 굶주림을 채워주었고, 20세기 중반까지도 서민들의 대용식량으로 쓰일 정도였다. 조엄의 고구마 전래는 문익점의 목화 전래에 필적할 만한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이러한 역사의 현장으로서 영도의 장소성은 큰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와 뭐 이렇게 전망 좋은 데가 다 있어요?”


이곳은 지난 1027일 새로 개관한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

전망이 좋다 못해서 부산항에서 시작해 7부두와 오륙도까지 펼쳐지고, 안쪽으로는 영도 쪽 해양대 아치섬까지 바라다보인다. 소설가 길남 씨는 후배 강군의 감탄사에 어깨를 으쓱거린다.

 

봐라, 내 따라 오기를 잘 했제?”


그런데 이렇게 전망 좋은데 놔두고 아까 오동 꽃길에서 굳이 사진 찍을 필요가 있었어요?”


갑자기 쿨럭이는 헛기침이 길남 씨의 마스크 안에서 새어 나온다.

 

, 여기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은 영도구청에서 2016년부터 착수했던 사업으로, 공원 조성, 기념관 건립, 체험광장 조성에 이르기까지 총사업비 441000만 원이, 사실 올해 3월부터 개관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땜에 열었다가 닫았다가.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며칠 전에 개관식은 했죠.”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다. 기념관은 지상 3층으로 건립되었으며 1층은 전시실, 2층은 카페 및 요리 체험실, 교육장은 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그리고 3층 옥상의 전망 뷰가 감탄을 자아내니 꼭 기억하실 일이다. 기념관 옆으로 고구마 체험 밭과 점프 놀이 등 체험마당이 마련되어 있고, 기념관 오른쪽 길로 1분만 오르면 조그맣지만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 공원도 조성돼 있다.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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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

 




그런데 선배, 고구마는 어디다 키웠었대요? 기념관이 이 근처니까 여기다 키웠나?”


아니, 기록을 살펴보면 동삼1동 삼거리 위의 언덕 일대라고 하는데. 알 수가 있나? 이쪽에서 내려가면 신기산업이라고 커피숍 유명한 데가 있거든. 거기하고 롯데 낙천대 아파트 부근의 차로를 조내기로라고 지어놨단 말이야. 하여간 고구마를 키우려면 햇빛이 잘 드는 양지바른 언덕이 좋다고 하니까 근처 전체라고 유추해야지 꼭 어디가 맞다 할 수 있겠나? 동쪽을 바라보는 언덕이 맞긴 하겠는데.”


조내기의 어원은 조엄이 가지고 온 고구마를 캐내는 곳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지금도 조내기 고구마라는 말이 쓰이고 있으며, 영도의 조내기 고구마는 약간 작으면서도 밤 맛과 흡사해 인기가 높았다 한다. 심지어 대마도 상인들이 줄을 서서 역수입했고, 해방 때 본국으로 돌아가는 일본인들이 종자를 챙겨갈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현재 조내기 고구마는 동삼 1동의 마을기업 조내기 고구마()’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한다. 청학동 485-1번지 약 4천 평 규모 부지에서 조내기 고구마를 재배 중이고 그와 관련된 여러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면 마을기업 조내기 고구마()’의 대표 황외분 씨가 조내기 고구마의 종자를 살려낸 에피소드를 찾을 수 있는데, 이야기에 MSG를 많이 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영도 조내기로  영도 조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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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조내기로

 




“‘조내기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시장에 갔는데 조내기 종자는 안 보이고 커다란 고구마가 보이는 거라예. 늘 고구마를 사던 할머니 보고 그랬죠. ‘조내기 종자는 안 팔고 와 이런 걸 갖다 팝니까?’ 그러자 그 할머니께서 내가 저 위에서 농사짓는데 그기 돈이 안 된다. 수확이 작아서 인자 나도 다른 걸로 바꿀라꼬.’ 그제야 제가 물었죠. ‘그 종자는 어디 있습니까?’ 할머니 대답이 우리 집에 있다, ?’라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황 씨는 할머니 손을 이끌고 집을 찾아 나섰다. 혼자 사는 할머니 집 방 안엔 이불에 덮인 조내기고구마가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그 할머니에게 말씀드렸죠. ‘내랑 고구마 농사지읍시더!’”

 

출처: 부산일보 - 마을기업 조내기고구마’, 201371311면 기사 

 

 

드디어 취재를 마친 소설가 길남 씨와 후배 강군. 그들은 영도 와치로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푸른 바다와 숲이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길이다.

 

뜬금없긴 해도 좋은 거 많이 봤네요. 근데 괜히 고구마가 땡기네.”

 

그런데 길남 씨의 대답이 없다. 강군이 흘깃 살펴보자 창가를 바라보는 눈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 또 딴 세상 속으로 빠져든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 짧은 소설로 썼다던 <조내기 고구마>를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군은 핸들을 남항대교 쪽으로 돌린다. 아까 가자고 했던 엉터리 집에서 낮술이라도 먹여놔야 소설가가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이다.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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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 전시실

 


 


영조 40(1764) 음력 95일 절영도(絶影島) 봉래산 밑 고귀마 밭.

이날은 시험 재배한 고귀마를 수확하기로 정한 날이었다.

? 거기! 그라믄 종자가 뿌사진다 아이가.”

밭고랑 여기저기서 성칠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봐, 성칠이! 우리 고귀마 한 번 배 터지게 묵을 수는 있는 기가?”

종자로 쓸 거 말고 따로 빼놨다. 걱정하지 마라!”

허허, 이 고귀마를 내년에는 다대포에도 심는다면서? 그라믄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겠다이.”

곁에 있던 또 다른 군졸이 말에 끼어들었다.

그란데 우리가 수고한 것도 모르고 처 묵으면 영 재미가 없는데? 이름이라도 지어 보내야지.”

그 소리를 들은 성칠이 입을 헤 벌리고 서 있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와 그라고 섰노? 맨날 조씨 영감탱이, 조씨 영감탱이 하더이? 조씨가 갖다준 고귀마니까 조나기 고귀마 아이가?”

조나기 고귀마. 조엄의 얼굴이 다시 떠올라왔다. 성칠은 평소 버릇처럼 저 멀리 동쪽 바다를 쳐다보았다. 그의 곁에는 고귀마 무더기가 사람 키만큼 높게 쌓여있었다. 성칠과 얘기를 나누던 두 군졸이 마주 보고 씨익 웃더니 고구마를 하나씩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물을 끼얹은 붉은 고귀마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 배길남 소설 <조내기 고구마> 에서 

 

  




배길남 소설가

소설집 『자살관리사』, 『짬뽕 끓이다 갈분 넣으면 사천짜장』을 발표하면서 ‘웃음으로 눈물참기’, ‘윗대가리에 저항하는 아랫것들의 서사’라는 평을 받았다. 2019년 소설가 길남 씨가 부산을 돌아 댕기는 로컬에세이 『하하하 부산』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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