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섬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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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DBpalm] 1회_작업복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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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유리 소설가 작성일 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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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의 사소한 것을 디비파헤쳐 저장하고 키운다_영도DBpalm


1_작업복 세탁소



내가 사는 동네 세탁소는 거의 체인점이다. 부산 구석의 신도시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국엔 한 동네에서 오래 영업한 세탁소가 남아 있는 곳도 많이 있지만, 세탁물을 맡기면 세탁공장으로 보냈다가 돌아오면 보관만 하고 고객에게 전해주는 프랜차이즈 세탁전문점이 점점 늘고 있다. 세탁 프랜차이즈 중 1위라는 월드크리닝이 전국에 500개가 넘는 지점을 보유한 가운데, 영도 대평동 수리 조선소 근처에서 오랜 세월 살아남은 비프랜차이즈 세탁소를 흔히 볼 수 있는 건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체인점 세탁이 3~4일 걸리는 데 비해 개인 세탁소는 짧으면 하루 만에 세탁해내기 때문이다. 체인점이 조금 더 저렴하지만, 매장 내에 세탁 기계를 구비하지 않았고, 개인 세탁소는 세탁 기계를 구비하고 있다



컴퓨터 세탁소



최초의 전기 모터 세탁기는 1914년 독일에서 등장했다. 전력 콘센트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세탁기의 등장이었다. 가정에 세탁기가 보급되는 동시에 세탁 공장에서도 손빨래를 하는 공원들 대신 세탁 기계가 들어섰다. 지금 골목 곳곳에 오래 자리 잡은 세탁소들은 빨래 수십 킬로그램을 한꺼번에 세탁할 수 있는 기계와 건조 기계를 누구보다도 먼저 도입했다. ‘워셔기라 불리는 대형 세탁기는 까다로운 기계가 아니라 일찍 국내 생산이 가능했다. 빚을 내서 기계를 사고 부지런히 일해 갚는 식이었다. 농업인들이 농작 기계를 대출로 사는 것과 비슷하다. 비싸고 좋은 기계가 있으면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 한국에서 1969, 금성사가 - 金星이라니 - 국내 최초 세탁기인 백조 세탁기를 세상에 내놓자 세탁소들은 가게 이름을 백조세탁소라고 짓곤 했다. 당시 광고 문구는 이랬다. ‘3kg 대용량!’ 크기는 현대와 비슷해도 3킬로그램의 빨래를 세탁하는 것을 대용량으로 쳐주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세탁소의 대대대용량 세탁기는 얼마나 컸을까. 내가 기억하는 80년대 초반 세탁소 안엔 철인 28호 같은 세탁 기계가 보일러의 힘을 받아 웅장한 소리와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작동되고 있었다. 그러니 한 덩이에 3킬로그램이 넘는 이불이나 커튼 세탁은 세탁소로 가야 했다. 70~80년대엔 이불 커튼 빨래쯤 큰 대야에 넣고 밟아 빨지 못하고 세탁소에 맡기는 걸 돈 낭비로 여겼지만,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인력보다 시간이 더 중요해지면서 번거로운 세탁물들은 세탁소로 갔다.

 

컴퓨터 세탁소컴퓨터 세탁소 

그리고 1981, 컴퓨터 세탁이 등장했다. 전엔 대용량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직물에 따라 적절한 온도를 정하고, 적절한 세탁 시간을 사람이 재고 지켜보다 작동을 멈춰야 했지만, 자판이나 작동 버튼을 눌러 입력하면 컴퓨터 회로가 알아서 제어하는 장치가 세탁기에 탑재되기 시작했다. 정확히 퍼클로로에틸렌 세탁이었지만 세탁소들은 새 기계를 들여놓고 컴퓨터 세탁’ ‘퍼크로세탁이란 간판으로 바꿔 달았다. 지금 가정마다 집에 있는 세탁기들은 그로부터 진화되고 또 진화된 형태다. 컴퓨터 세탁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 컴퓨터 세탁은 고급 세탁으로 여겨졌다. 무엇보다도 세탁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편리했다. 이전의 기름보일러 워셔기는 그을음이 많고 소음도 심했다. 연통이 막혀 재를 뒤집어쓰는 일도 잦았을 뿐더러 세탁소 보일러 폭파 사고도 심심찮게 신문에 날 정도였다. 1988년 다대2주공 세탁소도 그랬다. 88서울올림픽을 한 달 앞두고 내가 사는 동네 작은 세탁소에 불이 났다. 소방차가 즉시 대응할 수 없던 시절이라 주공 아파트 주민들이 다 달려 나와 양동이로 물을 부었지만 기름에 붙은 불은 꺼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둘 둔 젊은 부부가 차린 가게였다. 남편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아내는 불길이 짐승처럼 치솟는 가게 앞 화단에 앉아 흐느껴 울었다. 인산인해로 모여든 아파트 주민 중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와 내 밍크코트 백만 원 넘는 건데 .... 하다가 다른 주민들에게 욕을 먹고 사라졌다. 아이들이 허리를 굽혀 엄마의 눈물을 닦고 있었다. 커다란 불덩이를 배경으로 지고 작은 어깨를 흔들며 울던 서른 몇 살 여자의 아웃라인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저렇게 위험한 곳에서 저런 사고를 감수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지금도 있다는 것이,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믿기 싫었다.



컴퓨터 세탁소

    


동네 작은 세탁소가 하루에 쓰는 기름은 10리터. 이틀에 한 번은 자전거에 말 통을 싣고 직접 기름을 사 와 채워야 했다. 중동에 전쟁이라도 나면 유가는 뛰는데 세탁요금을 올릴 순 없으니 유가 변동을 업장에서 고스란히 견디는 곳이 세탁소였다. 전기료를 뺀 기름 값만 그때 시세로 한 달에 30만 원이 넘었다. 그러다 LPG 가스보일러로 바뀌었고, 지금처럼 전기만 사용하게 되면서 더 안전해졌을 뿐더러 작업 환경도 좋아졌다. 세탁소 운영자들은 더 이상 그을음을 마시지 않았고 기름 냄새에 두통을 앓지도 않았다. 기름 값 없이 전기료만 한 달에 25만 원 정도 드니 이익도 더 난다. 프랜차이즈 세탁소의 가격경쟁에 밀리고는 있지만 아직은 동네 세탁소의 연륜 있는 기술이 더 경쟁력 있다. 울이 들어가는 양복이나 고가 의류는 드라이클리닝을 하는데, 옷이란 게 입다 보면 찢어지고 올이 나가기 마련이다. 세탁소에서 짜깁기라는 광고를 옥외에 추가하면 세탁을 맡기면서 수선도 할 수 있었다. 찢어진 곳에 다른 실을 대거나 미싱질을 하면 기운 곳이 표가 나기 때문에 아랫단에서 실을 빼내 흠난 곳을 깔끔하게 고치는 기술이 짜깁기다. 동네마다 이런 기술을 가진 할머니들이 있어서, 세탁소에선 2만 원을 받고 옷을 받아 짜깁기 전문 할머니들에게 가져가 1만 원을 주고 고쳐왔다.

 

지금 대평동의 세탁소들은 작업복 세탁을 많이 한다. 하루에 70~80벌이 기름때에 절어 들어온다. ·하의 두 조각이 한 벌이니 실제론 120~130벌이 맞는 셈이다. 조선소는 노동자들에게 깨끗한 작업복을 매번 제공하기 때문에 회사가 세탁소와 거래를 하지만, 수리 조선소 근처에 있는 10인 이하 작업장에선 노동자들 스스로 더러워진 작업복을 모아두었다가 세탁소에 가져온다. 세탁소에선 열탕으로 기름때를 빼고 다리고 접어 고객에게 돌려준다. 30년 전 한 벌에 500원이었던 작업복 세탁비는 천 원, 2천 원, 3천 원, 이렇게 점점 올라 지금은 4천 원이다.

지금 영도구의 골목 세탁소는 80여 개. 팔천 개도 넘는 삶을 세탁하는 증기가 아직 잘 끓어오른다.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다시 묻을 기름때를 지우는 작업복처럼 주인은 바뀌어도 세탁소는 그 자리다. 늘 그 자리다.

 

 

정보제공 : 대평동 성광 컴퓨터 세탁 양의군 사장님.

사진 :  김유리





김유리 소설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원작 작가. 서울사람 아님. 텍스트 노동자. 출세욕있음. 의외로 잘씀. 의외로 착하고 귀여움. 글쓰기 강사. 365일 여는 강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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