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섬영도

"영도가 간직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바라보고 소중하게 기록합니다."

[영도DBpalm] 4회_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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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유리 소설가 작성일 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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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의 사소한 것을 디비파헤쳐 저장하고 키운다. 영도DBpalm
 


부산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길을 걷다 영화 촬영 현장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연히 나 무슨 배우 봤어, 나 저 영화 찍을 때 직접 봤어, 하고 증언할 일도 드물었다. 서울 경기권에서 촬영할 수 있는 영화팀이 굳이 부산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2005년 개봉한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가 특별출연한 송강호와 신하균에게 사제 권총을 쏘는 장면이 나타났다. 주례여고 골목이다. 근방에서 나고 자란 관객들이 객석에서 술렁거렸다. 영화란 걸 우리 동네에서 찍을 수 있다니. 콘텐츠 생산 현장이 가까울수록 어린 인재들은 꿈을 꾼다. 일상적 공간이 재탄생할 때 개인적이고 진부한 일상은 상상력을 가진다.

 

촬영장소는 촬영 전 2~3개월간 로케이션 헌팅 과정에서 결정되는데, 영화 제작부나 헌팅 전문가들이 담당한다. 2010년부턴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어 저기 부산이다!’ (동창을 만난 듯한 기쁨을 속으로 삼킴) 할 일이 점점 많아졌다. 2012년 작 <범죄와의 전쟁>, <도둑들>부터 본격적으로 부산 배경이 대형영화를 빛냈다. 영화촬영지 부산 투어도 생길 정도였다. 2013년 작 <신세계>에서 골드문 회장의 장례를 치르는 절도 초읍 삼광사다. 이런 영화들의 등장은 부산시 산하기관인 부산영상위원회의 각종 영화지원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영화 지원 기관을 필름 커미션이라 한다. 1999년 국내 최초 영화 촬영 지원기구로 출범한 부산영상위원회는 영화·영상물 촬영에 필요한 허가 및 행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제작 지원 정책은 제작을 중심으로 전, , 후로 나뉘는데, 제작 전엔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제작비를 지원하고 PPL도 연결한다. 제작 중엔 촬영 장비, 스튜디오, 영상 후반 작업을 하는 시설을 다 지원해 영화팀이 부산에 머무르며 작업 할 수 있다.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이지만 부산의 영화 관련 시설은 끝내준다. 해마다 공모전을 열어 신인 작가들을 선정해 훌륭한 작업실도 제공할 정도다.



영도 어느 상점에 붙어있는 촬영 협조 공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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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어느 상점에 붙어있는 촬영 협조 공고문
사진제공. 김유리 



그리고 영도가 영화촬영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섬이면서 섬이 아닌,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영도구는 파도가 때리는 절벽이 있는 관광지와 레트로한 골목골목이 몹시 매력적이다. 2013년 작 <변호인>에 등장하는 흰여울길은 지금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흰여울길을 따라 쪼옥 한 줄로 늘어선 집들의 현관문을 열면 한 걸음쯤 되는 좁은 골목길 너머 낮은 시멘트 담 위로 파란 사파이어 빛 파다가 펼쳐진다. 서민의 삶에 화려하게 침습하는 바다 뷰는 잔잔하고도 험난한 바다의 이미지를 인간의 삶에 투영하기 적절한 미장센이다. <범죄와의 전쟁> 역시 주인공 최익현의 가족이 지난한 삶을 살았던 동네로 흰여울길을 선택했다. 영화가 유명해지고 관광객이 폭발하자 흰여울길 집들은 하나둘씩 카페와 식당으로 변했다. 바다를 낀 골목엔 관광객이 통행하기 좋도록 고무바닥을 깔았다. 그러나 아직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고무바닥이 불편하다. 시멘트 바닥은 간편하게 물로 청소할 수 있지만 고무바닥은 세척이 어렵기 때문이다.

 


흰여울길, 영화 <변호인>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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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여울길, 영화 <변호인> 촬영지



2014년 작 <국제시장>에서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만난 덕수와 영자 부부가 재회하는 곳은 태종대다. KBS 일일드라마 <기막힌 유산>에서 수국이 만발한 바닷가, MBC 드라마 <더킹투하츠>에서 조정석이 총격전을 벌인 곳도 태종대다. 명소의 역사는 현재도 이어지나 보다. 하긴 태종대의 기암절벽만 한 절경이 또 없긴 하다.

 

<곤지암>에서 공포체험을 하는 장소, <신과 함께>에서 군인들이 훈련하는 곳, <1987>의 신문사, <더킹>에서 조인성이 다닌 학교, <판도라>에서 대피하는 주민들이 탈 고속버스가 모인 곳, <아수라>에서 재개발을 둘러싸고 그야말로 아수라판이 벌어지는 강당, <덕혜옹주>에서 일본 군인들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강당, <시간 이탈자>에서 임수정과 조정석이 달달한 로맨스를 만드는 학교, <고사>의 사건 현장, <인랑>의 섹트(무장테러단체), <무한도전> 461회 공포특집은 모두 영도의 한 장소가 배경이다. 바로 해운계 특수목적고등학교인 ()부산해사고등학교의 폐교다. 부산 해사고는 영도구 와치로 34에서 동삼동 매립지로 이전했고, 남은 빈 건물이 이토록 쏠쏠히 쓰였다. 곤지암의 흥행 덕분에 수많은 유튜버와 블로거가 무단침입해 근처 주민들이 몸살을 앓기도 했던 이곳엔 현재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의 특공대 훈련장을 짓고 있다.



태종대, 영화 <국제시장> 촬영지  태종대, 영화 <국제시장>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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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영화 <국제시장> 촬영지



감독이 슛, 하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배우들은 연기를 시작한다. 카메라는 슛과 슬레이트 소리를 따라 촬영을 시작하고 포커스를 잡는다. 우리 모두 느끼고 있듯, 영화란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가. 주말에 한시름 내려놓을 때 널따란 극장에 간식을 끼고 앉아 오프닝에 설레하며 화면에 폭 싸이는 경험이란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후 12개월에 엄마 품에 안겨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관람하고 초등학생 때 영화 <E.T>를 극장에서 보고 자란 부산 사람에게 영화촬영지로 부산이 선택되는 것은 몹시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촬영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관광지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땅값이 올라 기뻐하는 건물주밖에 없다. 건물주가 아닌 대부분의 주민들은 임대료 상승과 소음, 남의 집도 관광지인 줄 알고 문을 벌컥벌컥 열고 사진을 찍어대는 무례함을 견뎌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일과 촬영지에 사는 사람의 상생을 기획하는 작업은 언제 슛을 외칠 것인가. 영화와 영상에 자주 등장해 유명해진 나라 부탄은 연간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매일 200~250달러의 관세를 선지불하게 해 수익을 늘린다. 한국에서 그런 일을 할 순 없겠지만 어쨌거나 부탄은 방법 한 가지를 발명하긴 했다. 우리도 뭔가를 발명해야 하진 않을까. 찐 영화 덕후의 간절한 바람이다.

 

 

 

사진. 임소

 

 

 

김유리 소설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원작 작가. 서울사람 아님. 텍스트 노동자. 출세욕있음. 의외로 잘씀. 의외로 착하고 귀여움. 글쓰기 강사. 365일 여는 강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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