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섬영도

"영도가 간직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바라보고 소중하게 기록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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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은비 연구자 작성일 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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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림자들의 섬 중에서 스틸 컷 

 

카메라 아이콘
영화 <그림자들의 섬> 중에서




진심과 진실이 드러나는 장소그림자들의 섬(影島)에서의 얼굴들


부산의 영도를 생각하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나는 영도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그림자()들의 섬()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망각되었던 노동의 참된 가치, 노동소외 역사를 기록한 작품이다. 영화를 만든 김정근 감독은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 맨손으로 배를 만들며 기뻐하던 순박한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투사로 변해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쓰여 진 기록에 카메라의 포커스를 두지 않았다. 그보다는 비록 조금 더딜지라도 영도라는 섬 위에서 각기 다른 시대를 경험한 30-50대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얼굴에 집중했다. 영화 속 인터뷰 방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영도라는 장소와 노동자들의 얼굴을 동일 선상 위에서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영도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들, 잔잔한 바다의 리듬과 누군가의 얼굴을 포착하려는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조화롭게 교차하면서 시작된다. 바다와 노동자의 얼굴을 담아내기 위해 유영하는 듯 움직이는 카메라는 화려하진 않지만, 어느새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정감 어린 클로즈업 기법(affect-image)으로 변모하게 된다. 감독은 거대 자본과 주류 역사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진심을 기억하기 위해서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노동자들의 얼굴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 속에서의 인물들의 진실 된 얼굴()은 작지만 동시에 진심이 드러나는 가장 솔직한 장소로 표현된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 인터뷰 장면 중 스틸 컷. 김진숙  영화 <그림자들의 섬> 인터뷰 장면 중 스틸 컷. 윤국성 

a. 김진숙. 1981년 한진중공업 입사, 선각조립파트 근무.      b. 윤국성. 1985년 한진중공업 입사, 선각탑재파트 근무.
영화 <그림자들의 섬> 인터뷰 장면 중 스틸 컷. 박성호  영화 <그림자들의 섬> 인터뷰 장면 중 스틸 컷. 박희찬 

c.  박성호. 1982년 한진중공업 입사, 기관실파트 근무.      d. 박희찬. 2001년 한진중공업 입사, 전장파트 근무. 

카메라 아이콘
영화 <그림자들의 섬> 인터뷰 장면 중 스틸 컷



한진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사진관에 도착해서 인터뷰를 준비하는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비로소 누군가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관객에게 지각된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사진관에 들어오는 노동자들의 웃음소리와 조선소를 향해 흘러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유려한 조화를 이루면서, 웃음움직임이 경쾌하고도 산뜻한 앙상블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주목하려는 첫 번째 자극은 시각적 이미지보다 섬세한 청각적 사운드들의 쓰임새다. 깊은 바닷속, 심연과도 같이 낮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첼로의 선율. 음가(音價)는 분절적이지만 한 호흡으로 유려하게 움직이는 피아노의 선율. 그리고 앞서 등장했던 첼로와 피아노 소리에도 흔들림 없이, 괘념치 않고 자신만의 박자로 균등하게 움직이는 타악기의 묘한 리듬감은 짧은 시간 속에서 결합하면서 흩어지고 또다시 결합한다.

 

이렇게 오프닝에서부터 영도 주위를 흘러가는 악기들은 절묘하게 앙상블을 이루어 간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배경음악은 쉽사리 일방적이지도, 일관된 서사를 이끌어 가기 위한 단순하게 흘러가지도 않는다. 음악은 유도동기(leitmotiv)로 작동되지 않는다. 독특하게도 선율들의 미묘한 변화의 양상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반복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소리의 모양새나 음악의 쓰임새가 모두 달랐던 세 악기는 각자 자신만의 소리를 뽐냈지만 동시에 누구 하나 상대의 소리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프닝부터 등장하는 청각적 오브제들은 지극히 개별적이었지만, 동시에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흘러갔기 때문에 함께 하되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서로를 안온하게 감싸줄 수 있었다.

 

<그림자들의 섬>연대라는 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증언하는 영화다. 영도를 거쳐 간 인물들의 목소리에서 따뜻한 눈빛과 뜨거운 눈물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미 기계적 운동과 편집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 이미지들이 연합하여 영화라는 매체로 작동되는 순간, 인식되는 몽타주들이 관객의 감성과 결합하여 또 다른 운동을 끌어낸다. 그것이 바로 다른 예술에서 성취하지 못한 영화의 진짜 가능성이다. 영화는 수동적인 인식 속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스크린 밖의 세계를 겨냥한다. 1986년 이후 수많은 노동운동이 이루어졌지만, 연대의 가능성은 여전히 미래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그림자들의 섬>의 또 다른 증언이기도 하다. 노동과 자본의 교환 과정에서 생략되었던 개인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도, 반짝이지도 않는다. 이제 소여(所與)된 가능성을 부정하자.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될까? 우리가 함께해야 될 연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적인 것의 가치는 노동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노동자의 축 처진 어깨에서, 혹은 불빛 아래 비틀거리는 발걸음 속 그림자에서 드러난다.



봉래동에서 내려다본 한진중공업 

 

카메라 아이콘
봉래동에서 내려다본 한진중공업



서툴고 거칠었지만, 노동자들의 가치를 영도와 함께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생각해 보았다. 물론 여전히 나 아닌 존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그 어려운 걸 영화는 조금씩 도와준다. 영화를 보면서 주어진 의미를 자유롭게 조합하고 편집된 이미지들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미지가 지니고 있던 깨끗한 진실이 발견되니깐 말이다. 그러니 부탁하건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성급하게 연민과 동정의 대상, 혹은 질시와 모멸의 대상으로 이방인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이 멋진 표현은 내 것이 아닌, 어느 날 우연히 발견했던 가라타니 고진의 문장이다. 이처럼 내가 연구자의 삶을 결심하면서 주목하는 것들은 언제나 우연에서부터 시작된 만남이었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둘러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성장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영화 속 당신()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귀 기울여보자. 그리고 진심과 진실을 연결하는 가장 신비롭고도 생동감 넘치는 장소인 당신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자. 그런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이미 충분할 것 같다. ()





참고

 김정근, <그림자들의 섬 The Island of Shadows> 장편 다큐멘터리98minHDColor2014

● 김정근, <내가 싸우듯이 As I Fight> 옴니버스 다큐멘터리20minColor2020

● 참고자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01720&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사진.임소



조은비 연구자

연구자 겸 연주자. 대학에서 피아노와 미학, 영화를 공부하였으며 지금까지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전시와 강연에 다수 참여하였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증언하는 이미지: 잠재적 영화 이미지를 통한 역사 구성법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박사논문을 마무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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