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섬

"영도문화도시센터의 사람들, 사업, 철학과 비전을 소개합니다."

과정을 중심에 놓고 연결…연결…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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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봉권 국제신문 선임기자 작성일 2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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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절영마, 장소 : 동삼혁신지구 아미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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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절영마 <동삼혁신지구 아미르공원>


 


영도에는 다 있다

 

 

1998년이었다. 나는 사회부 신참 기자로 발령 났고 영도구 담당 기자가 됐다. 나는 영도 한 군데만 맡았는데,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때 대부분의 사회부 기자는 두세 군데 구청과 경찰서를 담당했다. 그 뒤 아홉 달 동안 나는 아침 7시께 영도로 출근해 밤 10시께 영도 밖으로 퇴근했다. 날마다 영도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영도를 잘 아는 영도 귀신같은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었고 그러다 영도와 사랑에 빠졌다. 그때 선배 기자와 공무원, 경찰에게서 많이 들었던 설명이 영도의 특별함이었다. 선배 기자들은 말했다. “영도에는 다 있다.”

 

선사시대 유적인 동삼동 패총부터 종()으로는 설화, 전설, 민담, 선사, 역사, 종교, 고대, 근대, 현대가 섬 안에 다 있다. ()으로 따져도 그렇다. 행정, 경찰, 소방, 항만, 해양, 수산, 대학, 학교, 기업, 공장, 관광, , 바다, 아파트촌, 영세민, 새터민, 도시공동체, 어촌공동체, 포구, 해녀, 골목, 무속, 음식, 병원, 복지관,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등등이 섬 테두리 안에 다 있다. 세로로 보면 역사와 선사의 타임캡슐이고 가로로 보면 수많은 표본을 모아놓은 것처럼 다채롭다. “지형 특성과 다채로움, 균질하지 않은 특징 때문에 정부나 부산시가 하는 신규 정책이나 시범사업을 영도에서 많이 해 왔다”라고 그때 만난 공무원과 경찰은 설명했다.

 

사회부 기자였으므로 영도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변사·화재 현장을 찾아 신선동, 청학동, 영선동, 봉래동, 동삼동, 대평동, 대교동을 부지런히 다녔다. 나는 어차피 영도만 담당하는 기자였으므로 시간은 많았고 갈 곳은 더 많았다. 아치섬 한국해양대의 그 길고 긴 입구를 걸어서 건너다닌 게 대체 몇 번이었던가? 봉래산과 태종대는 또 얼마나 드나들었던지. 한진중공업이 파업하면 광활한 조선소를 들락거렸다. 장애인 부부가 사는 임대 아파트에 취재 갔더니 넓이가 8(26.4)으로 너무 좁아 놀랐고, 선거 때는 갓 영도에 정착한 새터민을 인터뷰했다. 무엇보다 영도의 골목을 느꼈다. 여기 그 기억과 장면을 상세히 풀어놓을 수 없어 아쉽다. 다만 몇 가지는 써둔다.

 




  
동삼동 중리해변 가는 길 동삼동 동삼로 신선동 산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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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동삼동 중리해변 가는 길>                가운데. <동삼동 동삼로>                    오른쪽. <신선동 산정길>




이토록 아름다운 지명을,

이토록 많이 간직한 도시가 있을까

 

 

문학 또는 예술 관점에서 살피자면, 영도 안에 청학동, 봉래동, 신선동, 영선동이 모두 있는 점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영도구지등 자료에 있을 텐데, 이 이름이 모두 신선 사상, 도가 철학, 우리 고유 풍류 정신과 이어진다. 이토록 멋진 지명을 이토록 많이 간직한 고을은 없을 것이다물론 이들 지명은 영도 안에 살았던 사람의 생각보다 영도 바깥에서 영도를 바라본 사람들의 느낌이 더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월을 거치며 이들 이름은 하나의 문화가 됐고, 영도 정체성의 한 요소가 됐다. 그리고 우리 상상력을 자극한다.

 

절영도또는 영도라는 이름도 예사로 넘길 수 없다. ‘고려사등에 영도 옛 이름 또는 원래 이름으로 절영도가 나온다. 후삼국 시대 견훤이 왕건에게 절영도 명마를 선물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절영마절영마라는 이름은 하도 빨리 달려 그림자가 미처 달리는 말을 따라잡지 못해 끊어져 나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학 차원에서 보면, 이렇게 멋진 이름이 또 있을까 싶다. 참 빼어난 상상력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떨어져 나가고, ‘()’만 남아 현대 지명 영도가 됐다. 뜻만 풀자면 그림자 섬이 된 셈이다.

 

영도에 사는 분들은 왜 하필 그림자인가?’ 하고 생각하며 이 뜻풀이를 반기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반전의 계기를 본다. 많은 사람이 복닥복닥 정겹게 모여 살며 활력을 내뿜는 현대 도시 속의 섬 이름이 그림자 섬이라니! 상식에서 절묘하게 미끄러져 나가면서 아련한 느낌과 과감한 상상력이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기분이 언제나 든다. 영도와 절영도라는 이름 안에 예술이 이미 들어있다는 뜻이다. 예술의 저변에는 문화가 있다. 그리고 지금 영도에서는 영도를 문화도시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활발하다.

 


봉래산에서 내려다 본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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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산에서 내려다 본 영도 

© Nspiralstudio




영도가 가진 문화도시의 가능성을 더욱더 잘 풀어가려면

 

 

이런 관점에서 영도문화도시센터와 다리 너머 영도편집진 그리고 필자도 몸담은 영도문화도시 추진위원회가 잡아야 할 방향, 해야 할 일이 선명하게 있다고 본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영도라는 멋진 고을, 빛나는 가능성을 품은 도시가 가진 문화 자산을 최대한 폭넓게, 다양하게, 열린 관점에서 파악하는 일이다. 동삼동패총전시관 조개 가면은 후쿠오카국립박물관에도 있고 여기서 나온 신석기 시대 흑요석은 일본산이다. 해수면이 낮았을 선사시대 때부터 일본 열도를 들락날락했을 이야기에서 현대의 초연결 최첨단 삶까지 문화 자산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하면 나는 설렌다.

거문도에 사는 한창훈 작가에게 들은 바로는 영도에는 제주도에서 온 이주민뿐 아니라 거문도 출신 사람도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한창훈 작가는 명절에 영도에 있는 거문도 분들의 집을 한 바퀴 돌며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씩 예를 들자니 너무 많다. 끝도 없겠다. 예시를 드는 것은 여기서 포기한다.



동삼동 패총 출토 조개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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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삼동 패총 출토 조개가면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둘째, 철저히 과정 중심으로 전개하고 자꾸 연결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영도문화도시 사업을 거듭 들여다봐도 커뮤니티 프로젝트, 다시 말해 지역을 중심에 놓은 문화사업 성격이 강하다. 이런 사업은 주민·시민과 함께 가며, 듣고 들으면서, 이를 영도문화도시센터가 세운 원칙과 융합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할 텐데, 대개 이런 성격의 사업은 좋은 과정자체를 목표 삼아 진행할 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여기는 다름 아닌 영도다.


셋째, 업무 주체(실무 스태프)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잘 거치면 좋겠다. 그간 경험을 돌이켜보면, 실무 일꾼이 좌절하다가도 감격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거친 사업이 대체로 잘 진행된 것 같다.


넷째, 관점이다. 관광형은 타지 사람이 많이 오도록 매력을 높이는 일이다. 문화 프로젝트는 밑바탕에 문화가 있다. 문화는 삶의 표현이고 삶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영도라는 지명이 들어있는 이 사업은 영도 관점, 영도 주민 시점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이 웹진의 제호인 다리 너머 영도를 자꾸 돌아 들여다보게 된다. 편집진이 충분히 의논하고 검토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다리 너머 영도가 영도 바깥에서 또는 영도 바깥 시선으로 영도 쪽을 보는 느낌이 줄곧 남는다. 많은 사람이 영도를 더욱 신선하게 ()발견할 수 있게 하자는 뜻을 담은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 해도 영도를보는 시점보다 영도에서보는 관점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반짝반짝 영도, 찰랑찰랑 영도, 아시나요 영도, 스웨그 영도 같은 방향을 고민했다. 몇 달 전 영도문화도시 추진위원회 위촉식에서 위촉장을 받을 때 영도 주민을 대표해 추진위원이 되신 분들의 반짝이던 눈빛이 떠오른다.


추진위원으로서 진정으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힘을 보태고 싶다.





사진. 임소 

조봉권 국제신문 선임기자

1995년 국제신문에 입사했다. 문화부 기자로 16년가량 일했다. 사회부에서 5년 9개월 뛰었고 생활레저부 여행·등산 담당 기자로 2년 3개월, 편집부 기자로 2년, 편집국 부국장으로 1년 정도 활동했다. 기자로서 나름대로 맹렬하게 일하며 세상을 배웠던 시기는 신참 사회부 기자로 영도구를 출입했던 9개월이다. 그때부터 영도를 사랑하게 됐다. 문화부 기자로 현장을 뛰면서 ‘문화의 영역은 과정이 중요하더라, 아니 문화는 좋은 과정 자체가 목적이더라’라는 점을 배운 꽉 막힌 ‘과정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