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섬

"영도문화도시센터의 사람들, 사업, 철학과 비전을 소개합니다."

영도 문화도시에서 만나요 #1. 마을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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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서만선님 작성일 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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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다리너머영도 2호 <수리섬영도> 에서는 서만선님의 

'영도의 시(時) 속에 살고 있는 당신은 멋진 시인입니다' 영상을 소개하였습니다. 

서만선님의 삶에 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영도에서 시를 쓰시고 그림을 그리시게 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작가 인물 사진
 

 


안녕하세요, 영도와의 인연을 소개해주세요.


거제도에서 태어나, 거기서 스물한 살 때 결혼했어. 영도에는 1979년도에 왔지. 내가 1940년생이니 마흔 살 되기 전에 왔는데 지금 여든두 살이니 영도에서만 40년 넘게 살았네. 영도에 오게 된 계기는 애들 공부시켜야겠다고 생각해서였어. 그때 영감님은 직장도 없었고 돈 벌고 싶어도 거제도에서는 농사 아니면 일이 없었거든. 그래서 온 것이 영도 대평동이었던 거라. 거제도서 밤 11시나 되어서 출항했는데 조그만 배였지. 객선도 아니고 어선도 아닌, 잠수해서 조개 캘 때 타고 나가는 그런 배를 타고 부산에 왔는데 도착하니까 새벽 4시가 다 됐더라고. 그 후로 마을주민의 도움을 받아 대평동 시장에서 장사를 했고 청소 일도 했지. 부잣집 청소도 하고 대평동을 늘 청소하면서 살았어. 파출부로 일해 달라면 일해주고, 아파트 청소하면 그때 8만 원 받던 때야. 깡깡이 일 나가면 30만 원 넘게 받을 때였지. 돈을 생각하면 해야 했지만 돈보다는 집안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안 간 거라. 내 식구 중요하고 내 집이 중요했지. 그렇게 자녀 둘을 키우고 나니 대평동에서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그러다가 어느 날 집 근처에 공장이 생겨서 2017년 말에 남항동으로 왔어.

 

영도문화도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우리 집이 마을다방 한 집 건너 살았어. 경로당이 옆에 있고(지금 깡깡이 생활문화센터), 걔들 사무실이 요 위에 있거든. 어느 날 사업단이 경로당에 찾아왔더라고. 기록하고 싶다면서 옛날 사진 있으면 달라고 찾아왔었지. 그렇게 연이 시작되었어. 우리 집이 가까우니깐 잠깐 눈 붙이고 싶을 때 편하게 찾아오라고 했고 같이 국수도 삶아 먹고 그러면서 가까워졌어. 나 혼자 배부르게 먹으면 뭐 하노. 같이 나눠 먹어야지.




인터뷰 사진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업단에서 이민아 시인 선생님을 부른 다음 나한테도 수업 신청을 하라고 찾아왔더라고. 그래서 수업을 듣게 됐지. 6시간 했는데 공부하는 사람이 두 사람뿐이었어. 한 사람은 오전 장사만 하고 공부하니까 글이 늘었고 내만 빠지는 거라. 내가 그때 무릎 수술하고 그럴 때였는데 따라잡는다고 고생했지. 받침을 몇 번을 문댔다가 지웠는지 몰라. 아마 한 세 시간을 문대다 지웠을 거라. 따라가려고. 이민아 시인한테 정말로 못 하겠습니다.” 하니까, 이민아 시인이 어머니요. 이것도 잘한 거예요. 다 알아보니까. 해보세요.” 그래가지고 계속한 것인데. 한자도 200자 배웠는데 안 하니까 다 까먹어 버리고 한글도 발음대로는 쓰는데 받침을 모르겠어. 이민아 시인이, “할머니, 받침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말대로만 쓰세요.” 하대. 시인님 참 말 잘 하더만요. 받침이 없어도 찰떡 고물같이 말을 합디다. 정말로 그런 선생 일찍 만났으면 지금쯤 뭐를 못 했을까 싶어. 우리 엄마가 나 일 시키라 했다고 써 놓은 게 있었어.

 

엄마는 내를 이렇게 일을 시키고,

일만 시키고 명이 따러 가자.

고추 따러 가자.

염소 먹이러 가자.

 

이걸 본 이민아 시인이 그게 진짜 글입니다. 이 글은, 때 묻지 않고 거짓말 안 붙은 글입니다.” 이렇게 말해주더라고. 그게 나는 너무 고마운 거라. 할 줄 모르는 나를 데리고 와서 시를 짓게 해주고. 고마운 거라. 그 뒤에 사업단에서 영도 출신 소설가 정우련 선생님을 초청해서 또 자서전을 쓰자 이러는 기라. “인자 안 할랍니다. 인제 안 할래요. 내가 얼마나 따라간다고 힘들었는데.” 했는데도, “할머니는 안 한다, 안 한다 해도 제일 잘하면서.” 요래 약을 올리대. 내가 그거 따라 간다고 밤에 잠도 못 잔 적 있다고. 돈 생긴다카면 하겠지만, 만고 쓸데없는 거 내가 벌벌 떨면서 왜 하냐고 막 투정도 부려봤다. (웃음) 한참 이러니까 정우련 선생이 자서전 제목을 <부끄러버서 할 말도 없는데>라고 지어서 넣은 거라.



부끄버러서 할 말도 없는데 도서 표지

 

  

그러더니 책에 할매 그림 좀 그려 달라는 기라. 그래서 그려줬지. 그러더니 책 표지 뒤에 <표지 및 삽화 서만선> 글을 가리키면서 할머니 이게 책 표지 그림 그린 사람 표시입니다.” 하는 기라. 오메~잡 거. 기 살아~. 우매 우짤까. 이런 거 전혀 몰랐어. 오메 기 살어~ 너무너무 반갑데이. 내가 그린 그림을 가져다가 책에 조금씩 넣어놨더라고. 아이고 너무, 고맙다. 내가 어린 시절 꿈이 글 잘 써서 남 앞에 글을 내놓고 싶었는데. 이렇게 꿈을 이뤄서 너무너무 좋았어. 애들도(사업단) 너무 고맙고. 나를 불러주고, 내가 뭐 하는 것도 없는데 불러주고... 그래서 나는 시키면 뭐든 다 했지. 안 한 건 없다.


그림은 어떻게 그리기 시작하셨나요?


224일부터 코로나 땜에 경로당 나오지 말라 이래 된 거라. 내가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곳에서 일하는데 큰 도화지가 있는 기라. 그래서 가지고 왔지. 물감을 3,500원 주고 샀어. 은행에서 받은 달력에 삽화 그림을 따라서 두 장을 그려봤어. 내가 그린 그림에 평가를 좀 받고 싶은데, 부산에 친척이 아무도 없어. 거제에는 있어도. 별 것도 아닌데 물어볼 데가 없는 거라. 그래서 마을다방 총무님한테, “집에 있으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평가를 조금 받고 싶어서 총무님한테 왔습니다.” 했지. 그러니깐 총무님이 내가 그린 달력 쪼가리를 요렇게 보고 저렇게 보더니 진짜 할매가 그린 거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린 게 맞다고 하니까 총무님이 할머니 진짜 그림 잘 그렸다면서 여기 놔두소.” 그러더라고. 그렇게 총무님이 칭찬을 해주는 거라. 그래서 그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 여기 많이 있을 거야. 저번에 전시도 했어. 그렇게 그린 게 오늘날까지 그린 기라. 총무님이 누가 볼 거라고 그런 걸 그렸는교, 했으면 덮었겠지. 덮어두고 집에 처박아두고 여기 안 가져왔을 거야.


작가 그림. 경남 거제시 장목면 관포  작가 그림. 흰여울길
                                                       
좌. <경남 거제시 장목면 관포> 2020.12.30.       우. <흰여울길> 2020.12.23. 




앞으로의 계획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내가 무슨 계획을 따로 세우겠노. 그냥 계획 없이 살지. 지난번 뮤지컬 행사 인터뷰할 때 누가 나보고 장기적으로 그림을 그릴 건지 물어보길래 나이 팔십 넘어서 무슨 그림을 더 그릴 거고, 안 할 거라고 했는데 그래놓고도 지금 그림 두 장을 더 그렸거든. 그런 거지, .

만약 계획이 있거든 여기에(마을다방) 새로운 거 갖다 놓을 수 있다면 좋지. 이전 것보다 나으면 가져올 거고, 낯선 게 눈에 띄면 여기에 하나 올려놔야지. 지금도 이런 마음은 있어. 내가 병원 생활을 안 하게 된다면.




작가 그림. 학 2마리 그림

 

2020.11.25 서만선



문화도시에서 진행한 문화 활동에 참여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어떤 소회가 있으실까요?


다방이 생겼는데 이게 대평동 사람들 재산인 기라. 나는 시도 써봤고 자서전도 써봤고 연기도 해봤고 춤도, 뮤지컬도 다 해봤는데, 나이 팔십 넘어서 글 쓰는 한도 풀었고 뿌듯하지. 시도 잘 쓰나 못 쓰나 써봤고, 자서전도 잘 쓰나 못쓰나 한 번 써봤고, 잘 쓰는 사람한테 끼여서 갔지만 뿌듯했어. 내가 죽고 내 몸은 떠나더라도 내 몸에서 나오고 내 솜씨로 만든 게 남아 있다면 후손들이 볼 수 있지 않겠나. 세상에도 보이고 싶어서 이리 가져온 거라. 여러 사람이 보고 잘한 거 잘했다고 칭찬하고 잘못하면 잘못했다는 말 듣고 싶어서 여기다 가져온 기라. 우리 동네 모두의 집이니까. 이런 거 저런 거 있어야 어울리지. 사업단에 고맙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항상 아쉬운 건 엄마한테 못 한 기지. 못 배워서 엄마한테 못한 게 아쉬워. 엄마가 나한테 기역, 니은이라도 가르쳐줬다면은,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내가 이리 답답해하지 않고 살지 않았겠나. 1학년이라도 배울 수 있게 학교 보내줬더라면 지금보다는 안 낫겠나 이런 생각도 들지만, 옛날에는 다 못살았기 때문에 원망은 안 하지.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다 그런 거라. 그게 세상이라.





사진_강명수 작가

 






서만선님

올해나이 83살, 깡깡이마을에서 시 짓고 노래부르고 그림그리는 마을예술가
2020년 생활문화페어주간 <사.우.나>를 통해 '내일은 83살'로 미술 전시 및 <라라, 영도> 뮤지컬 동아리 참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