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삶과 도시 발전의 필수재가 되는 곳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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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윤정 영도문화도시센터장본문
어쩌다가 문화예술 영역에서 일하고 있을까 되묻다 보면 어릴 적 내 고향 통영이 생각난다. 한산대첩 축제가 열리면 초등학생들이 이순신 군대로 분장해 가장행렬을 했더랬다. 동네를 걷다가 고등어 손질을 하고 계신 노구의 전혁림 작가를 만나 꾸벅 인사했던 기억도 있다. 집마다 통영에서 난 자개가 옷장을 채웠고, 정월 대보름에는 달빛 아래 출렁이는 바다 위 구름다리를 친구들과 수다 떨며 건넜다. 감정의 표현, 미학적 감각, 전통 유산, 삶의 여유와 취향 등 내 문화 DNA는 이렇게 나고 자란 곳에서 대개 형성되었다.
부의 불평등은 쉬이 해소되기 힘들다. 하지만 시민 개개인이 가지는 삶의 태도, 취향, 행복감 같은 무형의 문화적 자산은 도시 정책으로 상당 부분 채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예술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상호호혜적인 공동체가 많은 도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존재 자체로 매력적이라는 것을, 서로가 연결되어 외롭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더불어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선을 시도하는 예술 활동은 도시에 새로운 정체성과 활력을 일으킨다. 버려진 폐공장이 문화 공간으로 탄생하고, 과거의 문화유산이 현재의 문화 산업 요소로 재탄생한다. 이렇게 도시 매력도를 높이는 예술 접근은 나비효과처럼 날아올라 원주민에게는 자긍심과 정주 만족감을, 외부인에게는 방문 욕구를, 창의적 인재들에게는 이주와 활동 욕구를 자극한다.
필자는 이것을 문화 예술의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부른다. 문화예술을 통해 개개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지역사회가 단결하며, 창의성을 높이고 사회 경제와 창조 산업 조성에 기여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연구원들은 예술 집정도가 높은 도시일수록 시민참여율, 사회적 결속력, 아동복지가 높고, 낮은 빈곤율을 나타낸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 도시의 문화 역량이 이렇게 중요하다.
지난 2019년 12월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해 7개의 제1차 문화도시가 법적으로 지정되었다. 문화도시로 지정되면 5년간 최대 200억 원 정도 예산으로 지역 특색과 현황에 맞게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게 된다. 영도구는 신청-검토-심의의 고단한 과정을 뚫고 ‘예술과 도시의 섬, 영도’라는 비전으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운영할 전문 경영 집단으로 문화도시센터가 설립되어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다양한 분야와 협업해 문화적 관점에서 영도 도시 전략 구축
5년간 문화도시를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첫째, ‘다양한 분야와 협력 해 도시의 종합적인 문화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문화적 해양 정책, 문화적 복지 정책, 문화적 공간 정책, 문화적 평생교육 정책 등을 협의하고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화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2020년 1월에 발표된 제2차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에 보면 ‘모두를 포용하는 문화, 문화로 혁신하는 지역’이라는 비전 아래 ‘자치·포용·혁신’을 주요 가치로 선정했다. 시민이 스스로 참여하고, 모두가 함께하며, 사회 혁신을 도모하는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문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예술 활동을 도시 정책에 적극적으로 연결할 예정이다. 예를 들면, 지난해 말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예술과 건강과의 상관관계를 증명한 보고서를 참조할 수 있다. 예술의 참여가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도움 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예술의 중요성 제고를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이 2014년 ‘사회적 처방’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활발한 성과를 내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는 프레임 워크로 ‘문화와 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부문 간 협업, 모든 단계에서 예술단체와 예술가가 필수적으로 협력할 것’을 언급했다.
영도문화도시는 올해 9월에 조직 구성이 완료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워크숍 및 연구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문화 환경을 위해 사회복지사 및 도시재생 관계자가 참여하는 문화매개자 학교, 커뮤니티 문화자원 조사, 영도 구민 문화 활동 실태조사, 해양문화지표 개발 연구, 작은 공간 조사도 진행 중이다. 내년에는 치매와 문화예술, 영도 문화 공간 클러스터 조성, 영도 바다 버스 노선 확장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문화정책 사업을 가시화할 예정이다.
두 번째로 관 주도 중심에서 시민 협력 문화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관 주도의 탑 다운 방식도, 시민 주도형 바텀 업 방식도 문화도시에 적합하지 않다. 행정+주민+전문 문화기획집단의 결합을 통해 탑 다운과 바텀 업의 균형과 상호작용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의 의견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반복되어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고 이것이 지속하다 보면 특유의 지역문화 정체성이 구축된다. 현재 센터는 ‘100인의 원탁 테이블-함께 만드는 문화도시’를 진행 중이다. 매 회 주민들의 참신한 의견과 문화적 욕구에 놀라며 흥미 있게 추진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수리조선업 관계자와 해양연구단지 연구원을, 이주민과 장애인을, 공간 운영자와 예술가를 만나고 매개하고 있다. 3명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는 문화 동아리는 문화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주민들을 만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 번째로 예술을 통해 영도의 도시 매력도를 높이는 역할이다. 매우 중요한 과제다. 영도가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될 때 슬로건이 ‘예술과 도시의 섬, 영도’이다. 영도는 부산이라는 대도시 내 4개의 다리로 연결된 섬이다. 태종대, 봉래산 등 천혜의 해안 경관을 보유하고 있고 부산항의 배후 산업단지로 1910년에만 조선업 14곳이 창업했고 현재에도 200여 개의 공업사가 성업 중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전쟁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하며 남항초등학교 앞과 흰여울 마을, 해돋이 마을 등이 피란민의 주요 거처가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해양생태·산업 및 생활 유산을 어떻게 ‘지속가능한 형태’로 활용하느냐이다. 언제나 도시 발전에서는 ‘적절한 개발과 보존’이 고민된다. 관광객은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부여하는 중요한 이방인이지만 관광객에게만 맞춘 정책은 도시를 단시간에 소비시키기도 한다. 지역의 부정적 스토리만 감성으로 부각할 때 예술은 그저 도구가 되지만, 장소-공간-사람의 새로운 매력을 지속해서 찾아 예술의 힘을 불어넣을 땐 그 자체가 예술이 된다.
도심 생태문화예술을 제대로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영도 곳곳을 걸을수록 단단해진다. 그래서 건축·시각·문학·영상 등 다양한 분야 작가들이 협업해 바다-도로-공장-숲 등 일상의 공간에 문화적 힘을 불어넣는 공공예술 「절영마 프로젝트」와 주민(정주민)과 전문가(이방인)가 함께 영도의 해양 생태환경을 걸으며 느껴보는 「영도 리서치 트립」, 영도의 작고 작은 소리를 채집하는 「소리 기록단」을 진행 중이다. 절영 산책로에 포진된 보호종을 조사해 소개하는 「절영 식물도감」이 발간될 예정이다. 영도는 정말 아끼고 싶은 사랑스러운 곳이 많다.
네 번째로, 삶과 지역 변화를 함께 기획하는 문화기획자 육성 트랙 구축이다. 그동안 많은 곳에서 추진했던 청년문화인력 양성 사업을 지켜보면서 고민이 많았다. 기획자 양성 교육 프로그램이 단 년 사업으로 적합한가, 교육 형태의 방식이 맞나, 중간 매개 집단의 포지션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이다. 관계-공간-정보를 연결하고 다음 활동을 기약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기획했다. 「영도가 문화학교」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을 추진하고 종료 후 영도의 다양한 기관과 매개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올해 선을 넘는 축제 기획자, 도시 생태문화기획자, 전환 도시 문화 기획자, 지역 문화 기록자, 디자인 기획자 과정 등 총 5개의 문화학교가 진행되었다. 사람을 중심으로 문화도시의 가치를 확산하는 「영도가 문화학교」를 통해 진심 영도구 전체가 문화학교 되는 상상을 해본다.
<영도 사회복지기관 리더 대상 문화도시 설명회>
센터 동료들과 함께 세운 올해 목표는 협력 주체 200명을 찾는 것이었다. 다행히 환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고 동료들이 발품과 정성을 팔아서 무난히 목표치를 달성할 것 같다. 내년에는 손을 보태준 주민-행정가-전문가 분들과 「2025 영도 문화도시 비전」을 리뉴얼할 생각이다. 영국 재무부 장관이 한 인터뷰에서 “뮤지션과 예술계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고 말해 이에 반발하는 많은 예술가 사이에 #SaveTheArts 해시태그가 돌고 있다. 맥락이야 어찌 되었든 예술을 경제적 측면으로만 바라본 부적절한 발언이라 뒤끝이 씁쓸하다. 예술이, 정말 예술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도시 발전을 도모할까? 누구도 외롭지 않은 도시 문화의 토대를 만들 수 있을까? 개방적이면서도 정주 의지 높은 주민들이 늘어날까? 앞으로 5년간 영도에서 증명해 보이고 싶다.